이제 막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깊은 산속 계곡을 홀로 걸어 올라 간다. 점점 사람들의 인기척도 사라지고 가끔 보이던 사람들의 흔적 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갈때 쯤 작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커다란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숲 속에서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너무 작아 몸을 굽혀 유심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발견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은 마법과도 같은 초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숲속의 요정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 한다. 단, 숲 속의 동화는 평화롭지 않다. 먹고 먹히는 수겁의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들은 숲속의 요정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맑고 찬 공기를 마시고 차가운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내 안을 향하던 모든 감각은 이제 모두 밖을 향하고 있다. 저 앞에 있는 어두운 나무 그림자에 신경이 쓰이고 발 밑을 빠르게 지나가는 바위틈에도 신경이 쓰인다. 내 눈과 귀는 더욱 민감해지고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신경이 간다. 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길이 있다. 같은 길은 없다. 다른이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걸었던 길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꼰대"라고 한다. 다른이에 대한 존중이 빠진 자신의 권위를 위해 도구 삼으려는 행위. 이 또한 나만의 길 위에 놓여진 장애물이라면 과감히 뛰어넘자. 길, 우리는 항상 길 위에 있다. -2022.7.17 신호철 총칭 찐따오씨아(金刀峡)

대멍짜 누치

대한민국 금산군 금강 누치 플라이낚시

2025년 4월 23일, 금강 상류의 적벽강 여울에는 누치(Skin Carp, 重唇鱼)의 산란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 전통 낚시인 견지낚시에서는 누치를 크기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데 30센티미터 이하를 돌돌이, 30센티미터 이상을 적비, 40센티미터 이상을 대적비, 50센티미터 이상을 멍짜, 60센티미터 이상을 대멍짜, 70센티미터 이상을 귀멍이라고 한다. 이날 플라이낚시로 65센티미터의 대멍짜 누치 한 마리를 잡았고 내가 지금까지 잡아본 물고기 중에 가장 큰 크기였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전날 박종운 선생님이 만들어 보내주신 거머리를 모방한 8번 크기의 벨런스 리치 훅(Balance Leech #8, Black)을 사용했다. 훅 아이(Hook Eye)가 가슴 부분에 있어서 수중에서 수평상태를 유지하고 줄을 당겼을 때 훅 포인트가 위로 들려서 바닥걸림을 줄여주도록 설계된 훅이다.

오전에 삼촌들과 적벽강 여울에서 피라미 견지낚시를 하고 점심 먹기 전에 강 상류를 둘러보다가 어느 여울 위에서 산란을 위해 모여있는 커다란 누치들을 발견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종운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검고 큼직한 거머리 플라이 훅(Balance Leech #8, Black)을 누치 앞으로 흘려보냈는데 일부 누치들이 따라오는 것이 보인다. 희망을 보고서 여러 누치 앞으로 흘리는 도중에 커다란 누치 앞으로 흘러간 훅을 누치는 살짝 고개를 들어 따라와서 삼켰다.

순간 떨리는 가슴을 미쳐 진정시키기도 전에 오른쪽 손을 번쩍 들었고 플라이 훅은 정확하게 누치의 입에 훅킹되었다. 3번 플라이 로드, 1.2호 티펫 끝에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묵직한 물고기가 걸렸다. 다행이도 드랙이 있는 플라이 릴(Fly Reel)을 사용했는데 훅킹 순간 줄이 너무 빨리 풀려서 드랙을 아주 조금 더 조여주었다. 너무 조이면 줄이 터질 것 같아 정말 아주 조금만 조였다. 플라이 로드(Rod)는 신기할 정도로 탄력이 좋았는데 완전히 “U”자로 휘어지면서 누치의 바늘털이를 버텨주었다. 아마도 플라이 릴에 드랙 기능이 없었다면 잡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누치를 걸고서 10분이 넘도록 플라이 라인이 풀려나갔다가 감기를 반복했다. 내 생각에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누치를 강 가장자리로 데리고 나오려면 다시 강 가운데로 갔다. 옆에서 구경하시던 작은외삼촌에게 손맛이라도 보시라며 플라이 로드를 넘겨드렸다. 가느다란 견지대로 대형 누치를 여럿 잡아보신 삼촌은 내 예상과 다르게 침착하고 끈질기게 누치와 힘 겨루기를 하셨다. 아마도 10분 정도를 더 누치와 힘겨루기를 하신 것 같다. 훅킹하고서 거의 20분이 다 되어서야 누치는 물가로 나왔다. 나는 누치 머리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뜰채를 들고 물가에서 누치를 떴다. 누치는 힘이 완전히 빠져서 꽤 순조롭게 나에게 안겨 물가로 나왔다.

황금빛 누치를 강가 수심이 얕은 곳에 눕히고서 자로 재어보니 65센티미터였다. 견지낚시에서는 60센티미터가 넘으면 대멍짜라고 부른다고 했다. 꽤 오랫동안 견지낚시를 다니시는 큰삼촌도 대멍짜 누치는 잡아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크기도 크기지만 비늘이 너무나 아름다운 누치였다. 누치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한참을 누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누치를 강으로 돌려보내려고 뜰채를 치우고 누치 머리를 세웠을 때 누치는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꼬리를 치고 단번에 깊은 강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큰 힘을 숨기고서 어떻게 그렇게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을까?

우리는 그 누치 한 마리로 이미 충분했다. 미련없이 점심을 먹으로 갔고 밥이 그렇게 맛일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일찍 같은 장소로 가보았는데 어제와 달리 누치들은 훅을 따라오지 않았다. 분명 하루 중 먹이를 섭취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듯했다.

누치들이 노는 여울 위에서 좀 더 위쪽으로 수심이 깊은 곳에는 산란철이 가까워진 커다란 잉어들이 때를 지어 다녔다. 누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몸통이 두꺼운 잉어 앞으로 훅을 흘려 보았지만 잉어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운 좋게 걸었다고해도 잡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수십마리의 누치와 잉어가 눈 앞에서 도망도가지 않고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한참을 구경했다. 일 년에 단 한 번 사란철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을 금강은 이날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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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대멍짜 누치(Skin Carp, 重唇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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