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깊은 산속 계곡을 홀로 걸어 올라 간다. 점점 사람들의 인기척도 사라지고 가끔 보이던 사람들의 흔적 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갈때 쯤 작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커다란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숲 속에서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너무 작아 몸을 굽혀 유심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발견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은 마법과도 같은 초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숲속의 요정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 한다. 단, 숲 속의 동화는 평화롭지 않다. 먹고 먹히는 수겁의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들은 숲속의 요정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맑고 찬 공기를 마시고 차가운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내 안을 향하던 모든 감각은 이제 모두 밖을 향하고 있다. 저 앞에 있는 어두운 나무 그림자에 신경이 쓰이고 발 밑을 빠르게 지나가는 바위틈에도 신경이 쓰인다. 내 눈과 귀는 더욱 민감해지고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신경이 간다. 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길이 있다. 같은 길은 없다. 다른이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걸었던 길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꼰대"라고 한다. 다른이에 대한 존중이 빠진 자신의 권위를 위해 도구 삼으려는 행위. 이 또한 나만의 길 위에 놓여진 장애물이라면 과감히 뛰어넘자. 길, 우리는 항상 길 위에 있다. -2022.7.17 신호철 총칭 찐따오씨아(金刀峡)

내 손을 떠나가는 산천어 한 마리

물 표면에 바짝 떠가는 10번 메뚜기 훅(Foam Hopper#10)을 시원하게 물고 들어 간 녀석을 물속에서 강제로 뽑아내서 손위에 올려놓고 보니 많이 놀란 눈치이다. 전장 22센티미터의 산천어.

이곳 산천어들은 예민하기에 7X(0.102mm) 티펫을 사용했다. 올해 자주 와보지 못한 계곡인데 가물어서 그런지 물속의 바위 위에 갈색의 먼지가 소복하다. 내년에는 비가 좀 많이 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이 계곡은 작년 한 해 많이 다닌 곳으로 보이는 소와 바위들이 눈에 선한 곳이다.

오후 1시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2시에 계곡에 내려갔다. 한국적인 잔잔한 부슬비가 새벽부터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조금 서늘한 날씨이지만 물은 그렇게 차갑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한참 동안 그럴듯해 보이는 소에서 반응이 없었는데 얼마 전 강원도 여행 중 물고기가 있을 듯한 곳은 사람들이 잡아서 없으니 이런데 물고기가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별로인 곳을 노려보라고 했던 낚시가게 사장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 말이 적중한 것일까? 없어 보이는 작은 여울들도 좀 더 꼼꼼히 탐색하던 중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작은 소에서 시원스럽게 올라오는 산천어.

같은 여울에 한 마리가 더 노닐고 있었는데 처음에 보지 못하였다. 이곳의 산천어는 민감해서 내가 본 산천어는 녀석도 나를 보았다고 보면 된다. 눈에 보이는 녀석은 정말 잡기가 힘들다. 훅이 떠내려 오다 물살에 밀려 돌 위로 올라갔는데 이것을 먹으려고 돌 위로 사납게 뛰어오르는 녀석이 있다. 약 8센티미터 크기의 산천어인데 지난겨울 이곳에서 태어난 녀석일 것이다.

이곳은 영서의 계곡으로 바다에서 송어가 올라오지 못하며 산천어 자체적으로 번식을 하는 곳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번식을 해 왔을까? 이미 대부분의 산천어는 번식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올해는 큰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바위 사이사이에 예전보다 모래가 많이 쌓여 있다고 느껴졌다. 작년에 비해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는 느낌이 있다.

1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39마리의 산천어를 잡았고 39마리의 산천어를 놓아 주었다. 어쩌면 플라이낚시는 우리 살아가는 인생을 많이 닮았다. 어렵게 손에 넣은 것을 다시 놓아주는 연습이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가져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버릴 수 있다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지 않을까? 산천어를 잡아 보아야지만 마음에서 놓아 줄 수 있다. 나는 아직 잡지 않고 놓아주는 법을 모른다. 그러한 경지가 있다면 힘든 경지이고 내가 아직 도달해 보지 못한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사무라이 만화에서 진정한 고수는 손에도 칼이 없고 마음에도 칼이 없는 자라는 멋진 대사도 있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말을 하는 주인공 자신은 평생을 거쳐 손과 마음에 충분히 칼을 가져본 사람이다.

내가 어렵게 잡은 산천어를 놓아 준다는 것은 산천어를 내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닌 무언가 좀 더 의미 있는 결과를 향한 과정 인지도 모르겠고 더 큰 의미의 놓아주기를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놓아주어야 하는 나의 집념이고 욕심인지도 모른다. 아니 언젠가는 놓아 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한 가지 확신이 가는 것이 있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아서 내 삶을 내 손에 잡아 보았을 때만이 진정으로 놓아 줄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다.

산천어가 사는 계곡 속의 가을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산천어의 2년이라는 짧고도 역동적인 순간에 마침표를 찍는 계절이다. 어쩌면 나도 그저 본능에 따라 열정적으로 살다가 가는 한 생명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 2015.10.11 Shin Ho Chul

산천어
경기도 가평군(Gapyeong-gun) 가을 계곡 산천어(Mas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