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깊은 산속 계곡을 홀로 걸어 올라 간다. 점점 사람들의 인기척도 사라지고 가끔 보이던 사람들의 흔적 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갈때 쯤 작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커다란 공간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숲 속에서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너무 작아 몸을 굽혀 유심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잘 발견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은 마법과도 같은 초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숲속의 요정은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 한다. 단, 숲 속의 동화는 평화롭지 않다. 먹고 먹히는 수겁의 먹이사슬 속에서 생존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들은 숲속의 요정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 맑고 찬 공기를 마시고 차가운 계곡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내 안을 향하던 모든 감각은 이제 모두 밖을 향하고 있다. 저 앞에 있는 어두운 나무 그림자에 신경이 쓰이고 발 밑을 빠르게 지나가는 바위틈에도 신경이 쓰인다. 내 눈과 귀는 더욱 민감해지고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신경이 간다. 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길이 있다. 같은 길은 없다. 다른이가 걷고 있는 길이 내가 걸었던 길이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꼰대"라고 한다. 다른이에 대한 존중이 빠진 자신의 권위를 위해 도구 삼으려는 행위. 이 또한 나만의 길 위에 놓여진 장애물이라면 과감히 뛰어넘자. 길, 우리는 항상 길 위에 있다. -2022.7.17 신호철 총칭 찐따오씨아(金刀峡)

플라이낚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

먹고살기 위해 살생(杀生)을 하고 살아있는 생명(生命)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그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경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같은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반문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면 필요하지 않은 살생은 피하게 되고 그 과정(过程)에서 잔인성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외래 어종을 잡아 없앤다는 명목으로 특정 생명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살생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다. 식물(植物)이던 동물(动物)이던 내가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 과정에 잔인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덜 살생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 과정(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은 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하는 세심한 마음가짐은 주변의 사물을 보고 느끼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알게 모르게 작용한다. 그러한 작고 기본적이 마음이 바탕이 되어 큰 일을 만들어낸다. 

플라이낚시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하고 싶다. 낚시가 주는 즐거움과 쾌감을 포기할 수 없어 물고기의 입에 바늘을 걸지만 잡은 물고기를 죽이지 않고 다시 놓아주려는 노력(Catch and Release), 물고기에게 상처를 덜 주기 위해 미늘(倒刺) 없는 바늘을 사용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낚시를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수 없기에 그 과정에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을 포기하지 않는다. -2024.5.21 Shin Ho Chul

야생화
야생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