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산천어 플라이피싱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흥겨워야 한다는 초심으로 보고 느끼는 것들을 기록하려 했다. 플라이피싱을 시작하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깊은 산중에서 산천어 플라이피싱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 아침 일찍 산천어가 살고 있는 건강한 계곡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자연을 곁에 둔 우리는 정말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점점 더 나빠지는 야생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사람에 의해 훼손된 자연을 대할 때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건강한 야생이 언제까지 그곳에 있을지 모르겠다. 항상 좋아지는 속도보다 나빠지는 속도가 더 빠른 것처럼 느껴진다. 야생을 더욱 야생답게 보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우리는 깊은 숲속 작은 쓰레기를 주워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많이 아쉽고 수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알려짐으로써 보존되기보다는 알려짐으로 가속도를 붙여 파괴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가급적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언급은 피할 것이다. 자연은 그 소중함을 알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 산천어 플라이피싱을 다니면서 우리와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생명들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야생과 좀 더 가까이 살아가고 싶다는 꿈도 찾았다. 나에게 산천어 플라이피싱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2013년에 우연히 플라이피싱에 대해서 알게 되어 아버지와 함께 플라이피싱에 대해 공부하며 탐색하는 기간을 가졌다. 우리가 처음 어떻게 플라이피싱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난 3년간 회사 일만 하며 달려오다가 지쳐 잠시 멈추어 나를 돌아 보고 있었던 시기였다. 어려서부터 물고기 잡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였지만 사실 언제부터인가 살아있는 미끼를 바늘에 꿰매는 것이 싫어졌고 바늘에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에 대한 미안함의 무게도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였다. 앞으로 내 인생에 낚시...

플라이낚시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

결론: 그래도 좋다

"왜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까?"

혹시 한국어로 된 플라이낚시 관련 책이 없고 번역본도 없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에서는 번역하시는 분들이 플라이낚시(혹은 낚시 자체)를 즐기지 않아도 "사명감"에 서양의 유명한 플라이낚시 책을 번역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어서 그래도 접해볼 수가 있다. 그렇지도 못한 경우 영어 원서를 읽어야만 한다.

한국의 "낚시춘추"나 중국의 "中国钓鱼(중국낚시)"잡지 대부분의 내용은 붕어 찌낚시 혹은 여러 종류의 루어낚시 혹은 바다 찌낚시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플라이낚시는 가끔 특집으로 잠깐 다룰 뿐이다. 그만큼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물음과 같이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야 읽을 거리가 많아지는 것일까? 혹은 읽을 거리가 많아야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인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져야 읽을 거리도 많아질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왜 굳이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다시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왜냐하면 나의 솔직한 마음은 어쩌면 플라이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적어야 제한적인 자연을 홀로 조용히 좀 더 넉넉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이낚시인이 많았을 때의 장단점과 플라이낚시인이 많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은 각각 따로 존재한다. 많으면 많은 데로 적으면 적은 데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된 플라이낚시 서적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2025.3.17 Shin Ho Chul

fly-reel
오래된 플라이 릴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유럽에서는 플라이 낚시 인구가 급증 했던 것 같다.
전쟁 중에 총을 만들던 회사들은 좋은 양산 기술력으로 플라이 릴과 같은 낚시 도구를 만들었다.
지금도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는 오래된 물건에서 당시의 지혜와 욕망을 엿볼 수 있었다.

댓글

Fly Fishing and Friends